주식 투자를 시작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퇴직 시점을 가늠하며 자산을 재배치하는 단계에 들어섰는데, 개인연금에 더해 주식에서 나오는 추가 수익으로 인생 2막을 좀 더 단단하게 받쳐보려 한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종목 하나하나보다 그 위에 깔린 큰 그림, 특히 지정학적 흐름이 거시경제를 어떻게 흔드는지에 자꾸 눈이 간다. 안목이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적어도 세상이 움직이는 방향 정도는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런 마음으로 지난 몇 달간 뉴스를 따라가다 보니, 베네수엘라와 이란에서 벌어진 두 사건이 이상할 정도로 닮아 보였다. 노트북을 열어 그 흐름을 한번 정리해본다.
카라카스의 새벽, 한 나라의 대통령이 사라졌다. 2026년 1월 3일의 일이다. 미국은 '확고한 결의(Operation Resolute Determination)' 작전으로 베네수엘라 수도를 공습했고,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영부인과 함께 침실에서 끌려 나와 뉴욕으로 압송됐다. 명분은 마약·테러 공모.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 법무부가 기소장 속 '체계적 마약 카르텔'이라는 표현을 조용히 들어냈다는 보도가 나왔다. 애초에 그 조직이 실재했는지조차 의문이라는 것이다. 한 나라의 수장을 끌어내린 명분치고는, 뒷맛이 개운치 않다.
같은 각본, 다른 무대 — 테헤란의 새벽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비슷한 장면이 다른 무대에서 반복됐다. 1월 말 이란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 개입 가능성을 공공연히 시사했고, 2월 27일 IAEA가 이란 지하시설에서 고농축 우라늄을 발견했다고 발표한 바로 다음 날 — 2월 28일 새벽 —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 전역을 동시다발로 타격했다. 이 공습으로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를 비롯한 이란 수뇌부 다수가 사망했다.
정권의 정당성을 먼저 부정하고, 그 위에 인도적·안보적 명분(학살 저지, 핵확산 방지)을 얹은 뒤, 군사력으로 핵심부를 제거한다. 베네수엘라와 이란, 두 사건을 나란히 놓고 보면 거의 같은 각본처럼 읽힌다. 물론 미국이 공식적으로 '정권 교체'를 목표라고 천명한 적은 없으니, 이건 어디까지나 사건의 전개를 따라가며 든 개인적인 인상이다.

다음 카드는 어디에 놓일까
마두로 체포 직후, 미국은 베네수엘라 강경파 실세인 카베요 내무장관에게 협조하지 않으면 '차기 제거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고, 중국·러시아·이란·쿠바 출신 정보요원의 전원 추방을 요구했다. 일부 안보 전문가들은 이때 미국이 콜롬비아와 쿠바에도 비슷한 경고 메시지를 흘렸다고 본다.
그렇다고 다음 타깃이 어디라고 단정 짓기는 이르다. 2003년 이라크, 2011년 리비아 모두 지도자 제거 이후 질서 관리에 실패하며 미국 내에서 '지상군 투입 금기'라는 정치적 학습 효과가 생겼고, 트럼프 대통령 본인도 2026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어 전면전보다는 제한적 압박에 그칠 거라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패권을 향한 압박은 계속되겠지만, 그 형태가 매번 침공으로 이어질지는 별개의 문제라는게 솔직한 생각이다.

내 계좌가 먼저 알려준 신호들
흥미로운 건, 정치적 사건의 진위 논란과 별개로 시장은 늘 더 빠르고 정직하게 반응한다는 점이다. 이번 이란 전쟁 기간, 그리고 그 전후로 한국 증시가 보여준 움직임이 특히 그랬다.
- 호르무즈가 막히자 정제마진부터 튀었다: 아시아 나프타 정제마진이 분쟁 전 톤당 108달러 수준에서 한때 400달러를 넘어섰다. 캐나다 중앙은행은 당시 국제유가를 배럴당 100달러 이상으로 봤다.
- 원화도 같이 흔들렸다: 전쟁 여파로 원/달러 환율이 한때 1,560원대까지 치솟았고, 원/유로는 17년 만에 1,800원을 넘었다.
- 종전 소식 하루 만에 거꾸로 뒤집혔다: 6월 19일 종전 협정이 타결되자 브렌트유는 하루 만에 4% 넘게 빠졌고, 코스피와 닛케이는 나란히 5% 안팎 급등했다.

그런데 정작 올해 한국 증시를 가장 흔든 건 따로 있었다. 코스피는 5월 15일 사상 처음으로 8000선을 찍었다. 1월 5000, 2월 6000, 5월 초 7000을 넘기더니, 7000에서 8000까지는 단 8거래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물론 그 중심에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HBM 슈퍼사이클이 있었고, 국내 정치 상황도 한몫했다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옆에서 조용히 같이 뛰었던 조선·방산·원전을 보면, 이야기가 좀 더 입체적으로 읽힌다. 중국의 조선업 패권 확대를 견제하려는 트럼프發 압박 속에 한국 조선업이 반사이익을 봤고, AI 데이터센터발 전력난으로 원전이 화려하게 복귀했고, 방산은 수출 물량 자체가 늘며 재평가를 받았다. 결국 이 세 섹터의 호황은 한국 기업의 실력만큼이나, 트럼프 시대의 지정학적 퍼즐이 마침 한국 쪽으로 맞아떨어진 결과이기도 한 셈이다.
종목 하나를 고르는 안목보다, 이런 큰 흐름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먼저 읽어내는 감각이 결국 노후 자산을 지키는 또 다른 무기가 아닐까 싶다. 조선·방산·원전 이야기, 그리고 8천피 시대 한국 증시의 속사정은 분량이 길어 다음 편에서 따로 풀어보려 한다.
'경제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닉슨 쇼크부터 이라크 침공까지: 석유 결제망을 둘러싼 미국과 후세인의 숨겨진 잔혹사 (0) | 2026.07.01 |
|---|---|
| 2026 상반기 지정학 리포트: 트럼프식 패권 전략의 패턴과 다음 시나리오 (0) | 2026.07.01 |
| 비트코인과 RWA의 본질: 패트로달러 이후 거시 경제 관점에서 바라본 디지털 자산 가설과 시장 해석 (0) | 2026.06.30 |
| 소백산자연휴양림 이용 후기: 단양 소백산 자락에서 느낀 담백한 웰니스 숲캉스의 매력 (0) | 2026.06.30 |
| 코스트코 가격표 숫자가 말해주는 쇼핑의 힌트 (3) | 2026.06.28 |